본문 바로가기

리뷰

세븐 힐스 (Seven Hills) - 어렵지 않은, 그러나 눈치보이는 신선한 영향력 게임.


디자이너 : 허남철
제조사 : 게임 휴머니티
게임인원 : 3 ~ 4 명
게임시간 : 60분
게임연령 : 9세 이상


에센 프리뷰로 소개했던 게임 휴머니티의 신작 [세븐 힐스]입니다. 이번 에센에 출품되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대략적인 진행은 카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클리엔테스 말을 놓아야 합니다. 영향력 게임이니 당연히 특정 구역에 놓여진 말들의 갯수를 파악해서 해당 지역의 우세 세력을 정하고 1위와 2위가 해당 점수를 얻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이외에 여타 다른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풍성한 콤포넌트들. 카드는 질이 약간 두꺼운 편입니다. 프로덱터가 굳이 필요 없을 정도.


[세븐 힐스]의 아트웍은 이미 정평이 나있죠.


게임이 전체적으로 핸드에 있는 카드 관리로 진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카드를 수급받는 것이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카드가 한 장 혹은 두 장뿐이고, 추가로 더 카드를 가져오기 위해서는사용하는 액션과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선택의 묘를 잘 택해야 합니다. 또 이쯤 되면 영향력 게임 특유의 눈치 보기도 일어나게 되죠.  

무엇보다도 자신의 턴의 끝에 한 장을 반드시 반납해야 합니다. 이 경우 카드를 반납하지 못하면 무려 10점이라는 큰 점수를 감점 당합니다. 이걸 잊어서 감점 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결국 사용때 두 세장을 사용하고 한 장은 반납해야 하니, 카드를 손에 비축해 놓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핸드 제한은 일곱장!


선택할 수 있는 액션들 중 제일 일반적인 것은 같은 바탕색의 카드 세 장을 내려 놓고 이때 클리엔테스 말을 내려놓는 정착 액션입니다. 많지 않은 핸드에서 무려 세 장이나 내려놔야 합니다. 꽤나 큰 액션이 되는 셈이죠. 이때 내려놓은 카드 가운데 클리엔테스 말이 있는 계급이 있다면 그만큼의 말을 원하는 언덕에 배치시킵니다.  


내려 놓을 수 있는 '언덕'은 제한되어 있고 한 군데다 몰아서 놓을지, 아니면 다양하게 늘어놓을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입니다. 또 곧 있을지도 모르는 반란을 대비해서 놓여지는 말의 계급들도 신경 써야 합니다. 


플레이어가 놓은 말의 갯수만큼 라운드 마커가 진행됩니다. 따라서 서로 눈치보며 소심하게 진행하면 게임은 서서히 진행되고 누군가가 그야말로 '달리기' 시작한다면 게임의 진행도 빨라집니다. 또 내려놓은 카드의 특수 액션을 통해서 몇 가지 변수를 작용시킬 수 도 있습니다.




[세븐 힐스]의 미묘함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하층계급인 '전사 (Gladiator)'와 '노예 (Slave)'입니다. 각 계급의 카드 좌측 상단에는 해당 계급의 클리엔테스 말이 어떻게 생겼는가의 표시가 나와있는데요, '전사'와 '노예'는 보시다시피 해당 말이 없습니다. 이들은 말그대로 반란을 벌입니다. 물론 반란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상대방 플레이어입니다. 

카드의 배경색과 관계없이 카드를 두 장 혹은 세 장을 내려놓으면 반란이 시작됩니다. 세 장을 내려 놓으면 두 군데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유효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핸드에 카드를 적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반란의 주동자는 상대방 플레이어의 클리엔테스 말을 내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상대방 하나를 죽이고 내 것을 더 놓게 되니 그 차이가 크죠. 어지간하면 반란이 안 일어났으면 하겠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반란은 필수 불가결 요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정착 액션으로 그냥 소소히 자기 땅만 키우게 됩니다. 혹시 호전적이지 않은 플레이어들끼리 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몇 번의 플레이 결과 그런 일은 안일어나더군요.



재밌는 것은 반란을 제압할 수 있는 백인 대장입니다. 이 경우 반란의 발발지에 백인 대장이 있을 경우 각각의 귀족 한 명씩을 보호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에서는 적색 플레이어의 백인 대장이 귀족(정사면체)을 보호하는 상황입니다. (보호를 위해서 귀족의 등을 타고 올랐군요!)

실질적으로 반란의 주도자는 백인대장이 있는 곳에서 공격을 하긴 힘듭니다. 그렇다고 백인대장을 줄줄이 깔아 놓자니 갯수가, 아니 명수가 플레이어 당 다섯 명 뿐이고 그나마 이것도 카드 조합이 따라줘야 가능합니다.



[세븐 힐스]의 재밌는 점은 라운드의 마무리에서 집정관 선출로 또 다른 변수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일곱개의 언덕 중앙에 있는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인데요. 이곳의 인구를 비교해서 집정관을 선출합니다. 집정관은 기본으로 얻는 2점의 혜택도 있거니와 전체 언덕에 있는 평민 말 중 두 개를 군사 지역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4인플일때는 집정관을 두 명까지 선출합니다.

각 지역에서 인원수의 최대수,차점자 수를 정한 뒤 점수 배정을 하기 때문에 집정관의 '두 명 보내기' 파워는 꽤 변수를 줍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한 곳에 몰표를 할 것이냐, 전반적으로 깔아놓을 것이냐도 고민스러운데 집정관의 파워를 위해서 포룸로마눔에 배치해야 할 것이냐의 고민도 생깁니다. 사실 집정관의 기본 점수 2점은 다른 언덕에서의 메이져 점수 (7점, 혹은 5점)에 비해 결코 크지는 않기 때문에 무작정 사람만 넣을 수 는 없습니다.

어쨌든 집정관이 보내는 평민들은 군소리 없이 전장인 마르티우스 산으로 가야합니다.

"엄니가 보고싶어요......" (이 사진에 오류가 하나 있군요. 뭘까요?)

산으로 차출된 병사들은 한 라운드 후 대기 캠프로 이동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당 플레이어가 새롭게 뽑는 카드에 표시된 액션을 통해서 귀환할 수도 있고 더 머물 수도 있고 일부만 돌아가기도 하는 다양한 운명의 선택에 놓여지게 됩니다. 이 귀환 결과 역시 (피동적이긴 하지만) 게임의 향방에 큰 역할을 합니다.


라운드의 마무리는 점수 계산입니다. 각 언덕 별로 놓여진 말들의 갯수, 아니 인원수를 비교해서 최대 (5점), 차대(2점)를 정합니다. 라운드 별로 놓일 수 있는 언덕이 제한되어 있는데 신규 언덕은 최대,차대 점수가 각각 7점, 4점이니 더욱 눈독 들일만 합니다. 여기에 그 동안 별 하는 일 없어 보였던 '에퀴테스' 계급(6각원통)이 두 명 이상 놓였을 경우 두 명 당 1점을 받습니다. 에퀴테스 배치를 초반에 신경써야 함은 물론이겠죠.


어쨌든 단순한 영향력의 틀에서 벗어나서 랜덤하게 구성된 배치의 요소, 그리고 여기에 계급간을 통한 공격, 점수 획득의 변수가 있기에 좀 더 게임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영향력 게임이 다 그렇듯이 [엘 그란데]나 [샤를마누]같은 명작들을 연상시키는 감도 있지만, 반란의 개념, 그리고 집정관 선출과 파병이라는 변수는 분명 [세븐 힐스] 고유의 재미를 줍니다.



계급간의 말 형태를 잘 익혀놔야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게임의 가독성 측면에서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텍스트가 아닌, 클리엔테스 말의 형태를 읽는 부분의 가독성이라고나 할까요. 초반에는 계급별 말의 형태가 잘 안들어와서 말을 배치할때 느낌이 그냥 고만고만합니다. 특히 매뉴얼에서도 그냥 계급으로만 언급을 하니까 이게 실제 말의 형태와 잘 매칭이 안됩니다.

하지만 사실 플레이를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익숙해지는 부분이긴 하죠 나중에 게임이 잘 되어서 각 계급별로 괜찮은 형태의 피겨가 들어있는 스페셜 에디션이 나오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때는 백인 대장이 귀족의 등에 탈 수 없겠군요.)


텍스트에 있어서도 가독성의 아쉬움이 살짝 있습니다. 특히 보드판에 있는 라운드별 배치 가능 언덕과 해당 점수표에서 언덕 이름은 나름 당시의 분위기가 나는 이탤릭 필기체이긴 한데, 의외로 읽기가 힘듭니다. 예전에 알레아(Alea) 버젼 [플로렌스의 제후]도 게임성과는 별도로 이런 원성을 다소 들었었죠.


[세븐 힐스]는 게임 휴머니티의 좋은 출사표입니다. 사실 최근의 인기 게임들이 방식에 있어서 나름의 어떤 트렌드를 따르고 있는 것에 비해 영향력 게임의 리듬있는 진행은 색다른 게임 즐기기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전략 게임들이 소소히 나오고 있는 요즘의 국내 시장에서 한국의 보드게이머들이 의무감으로 지지해주지 않아도, 그저 하나의 좋은 게임으로 즐겨도 전혀 무리가 없을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