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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PC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 [안도르의 전설] (Legends of Andor/2012)

 


[안도르의 전설]의 디자이너는 그간 수많은 게임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해왔던 미하엘 멘젤. 그가 디자이너로서 출사표를 던진 게임인 셈인데, 꽤나 좋은 마수걸이 작품이 되었습니다. SDJ의 Kennerspiel des Jahres 은 물론이고,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각종 수상부문을 석권했으니까요.


줄줄이 이어진 시상 경력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많은 평단이 이 게임을 '가족 게임'으로 분류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텍스트의 분량이 반드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분량의 텍스트가 있음에도 가족 게임의 범주로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플레이어들은 4종류의 직업 중 하나를 맡게 되는데, 그 직업은 이런 판타지 테마에서 닳고 닳은 전사, 궁수, 마법사, 난장이입니다. 캐릭터를 정한 플레이어들은 팀으로 움직이게 되며, 자신의 턴에 이동, 전투, 대기 등의 행동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행동들을 선택하든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줍니다. 하루는 7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루가 가면 알파벳으로 구성된 전설 단계가 한 칸 전진합니다. 전설 단계는 A부터 N까지로 되어 있는데, 어떠한 퀘스트든 N에 다다르기 전까지 해당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게임은 시나리오에 기반한 진행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진행 방식은 첫 번째 시나리오인 'The Heros Arrive'를 진행하며 숙지하게 됩니다. 독특한 점은 모든 시나리오의 진행이 '전설 카드'라 불리우는 대형 카드에 쓰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 카드를 제외하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 개념은 겨우 4페이지짜리 설명서가 전부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4페이지 설명서와 첫 번째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게임의 기본 개념을 숙지하는 셈이죠. PC 게임등에서 볼 수 있는 '튜토리얼'의 개념인 셈입니다.


실제로 [안도르의 전설]은 여러모로 RPG 형태의 PC 게임을 연상케 합니다. 일관성 없이 수많은 구성품들이 있지만, 각 시나리오를 거듭하며 해당 구성품들이 점차로 게임의 일부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곳곳에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 면면은 PC 게임에서 새로운 캐릭터, 혹은 아이템이 짠하고 등장하는 그런 장면을 연상케 하죠.



이런 류의 게임에서 약점은 시나리오를 마무리 했을 경우 리플레이의 감흥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안도르의 전설]에는 모두 6개의 시나리오가 있지만, 그나마 그 가운데서 튜토리얼과 커스텀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모두 4개 뿐입니다. 게임 플레이 자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이 게임을 '할 만큼 해보는 사이클'은 여느 게임보다 짧아 보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안도르의 전설]은 곱씹는 맛이 있는 게임입니다. 5개의 시나리오가 사용하는 요소들이 다른 편이고, 심지어는 무대가 되는 보드 역시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각 시나리오의 진행들 자체가 아주 미니멀한 기본 개념의 토대 위에서 다양화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운적인 요소의 배합이 가미되긴 하지만, 전투 자체가 주사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번의 플레이에서 절대적인 상황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도 여기에 한 몫하고요.

또 협력의 묘미도 제법 있는 편입니다. 타워 디펜스 방식의 협력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상대방 격퇴를 자제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 이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해치우면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갑니다- 단순히 방어/격퇴 뿐만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가 활로를 만들고 행동의 반경을 넓혀주도록 또 다른 플레이어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활약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전략을 세우지 않고, 단순 반복적인 진행만을 한다면 아무리 초반 시나리오라해도 마스터하기가 녹록치 않습니다.



게임에 텍스트가 많지만, 사실상 게임의 나레이터와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플레이어 한 명만 제 몫을 해준다면 게임 진행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한글판이 나오지 않은 게임임에도 접근 장벽이 아주 높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미 국내에서는 여러 유저들이 말끔한 한글화 작업을 해놓기도 했지만요.


분명 시나리오의 유한성이 눈에 보이는 아쉬운 점이긴 합니다. 당연히 이는 확장으로 해결되야 하는데, 이는 2013년에 나온 공식확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불이 붙을 예정입니다. 확장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게임이어서 아마 한동안 이 러시는 계속 이어질 듯 합니다.

 

하지만 1개의 튜토리얼과 4개의 본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재미와 독특한 진행방식에서 얻는 참신한 인상만으로도 [안도르의 전설]은 만만치 않은 게임입니다. 튜토리얼이 게임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타지 RPG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보드게임을 소개하기에 좋은 기제로도 추천할 만한 게임이 될 가능성도 다분한 멋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