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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쉬운 플레이, 끝없는 다양함 [글래스 로드] (Glass Road/2013)

 

 

[아그리콜라]로 시작된 우베 로젠버그의 수확 시리즈는 대략적인 게임의 모토를 유지하면서 이전 작품들의 아이디어를 겹씌워가는 발전을 해왔습니다. 여느 게임에 비해 늘 창의적이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기복제나 피로누적이 있을 수 도 있다는 우려도 생길 법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평균 이상의 훌륭한 재미를 보장하는 게임들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기존 게임들의 확장까지 포함하면 한 해에 발표하는 게임이 적지 않은 그의 행보를 고려하면 대단하다 할 수 있죠.


[테라 미스티카]로 로젠버그와 인연을 맺은 제작사 포이어란트에서 나온 [글래스 로드] 역시 그의 수확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임입니다. 독특한 점은 비교적 게임의 진행이 간단하며, 그 덕분에 플레이 타임도 짧은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로젠버그는 비슷한 시기에 [아그리콜라]의 또다른 변형에 속하는 [카베르나]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상당한-아니 육중한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한 볼륨감을 가진 게임이라는 점에서 두 게임의 대조는 흥미롭습니다.

 


 

[글래스 로드]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게 요약이 가능합니다. ‘15장의 직업 카드 중 5장을 골라서 그 중 3장을 순서대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런 진행 가운데서 독특한 점은 자신이 선택한 카드를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한다면, 그 카드를 기존 사용가능한 3장에 추가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임이기에, 상대의 선택으로 여벌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큰 이점이죠. 하지만 [글래스 로드]에서는 이런 예기치 않은 추가 행동이 오히려 계획했던 행동의 운신을 좁힐 수 도 있어서 그 선택이 양날의 검이 됩니다. 사실상 이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이기도 하고요.

 


또, 자원의 운용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때부터 적용해온 아이디어는 '자원은 무조건 많아야 그만'이라는 간단한 성삭에 약간의 뒤틀림을 줍니다. 필요한 자원에 따라 또 다른 자원의 획득을 그야말로 적당히 해야하는 거죠. 이런 자원의 안배는 게임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사실상 [글래스 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요소요소의 다양함을 취합하면서도 게임을 간단하게 만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게임의 경우 15종의 직업 카드의 숙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그 직업 카드 마저도 대부분 아이콘으로 된 자원 교환이나 건설의 표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서대로 카드를 내려놓으며 진행, 그리고 겨우 4라운드만 지나면 게임이 종료 합니다. 간단하죠.


이런 간단한 게임이 가질 수 있는 리플레이성의 취약함은 많은 수량의 건물타일들로 보강됩니다. 3개 분야별로 31개씩, 93개의 타일들이 있지만, 게임마다 사용되는 타일은 12개 혹은 15개이고, 라운드 종료 후 보충되는 타일도 게임시에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닙니다. 이러다보니 게임을 할때마다 생기는 건물의 기능과 점수 혜택에 따른 조합이 무궁무진하고, 간단한 개념으로 익힌 직업 카드와 자원 관리의 묘는 플레이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다만 여느 게임과 다르게 카드가 아닌 타일에 텍스트들이 다소 있다는 점은, 영문 텍스트가 익숙치 않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약간의 장벽이 됩니다. 타일의 다양함과 방대함이 게임의 장점이지만, 그만큼 해석해야 하는 타일이 많아지기에 상대적으로 아쉬운 면이 되기도 하죠.


정반합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쉬운 규칙 숙지와 리플레이성, 다양한 구성품들과 그 효율적인 운용들을 모두다 취합해낸 괜찮은 게임입니다. 특히나 그 특성때문에 하면 할수록 맛깔스러운 재미가 더 돋보이기도 하고요.

 

 

우베 로젠버그는 그의 불세출의 힛트작들을 다른 변용으로 선보이는 시도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2013년에 두 개가 나왔고요. [아그리콜라]가 [아그리콜라 :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과 [카베르나]를 통해서 재조명 되었다면, [기도하고 일하라]는 [글래스 로드]로 재조명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래스 로드]는 단순한 모사작이 아닙니다. 로젠버그가 그동안 시도해온 다양성을 좀 더 쉬운 수준으로 취합한 결산의 정점에 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훌륭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