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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진정한 덱빌딩의 혁신 [레전더리 인카운터 : 에일리언 덱빌딩 게임] (Legendary Encounters : An Alien Deck Building Game / 2014)

 

어퍼덱 엔터테인먼트의 [레전더리 마블 덱 빌딩 게임]은 초기에 그다지 큰 주목을 받은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마블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을 테마로 했다는 점은 분명 화제이긴 했지만, 코믹스 출판계의 라이벌인 DC의 캐릭터들로 만들어진 크립토조익의 [DC 수퍼히어로 덱빌딩 게임]이 훌륭한 구성품 퀄리티로도 그 재미에 있어서 큰 반응이 없었던 것 역시 하나의 이유였을테고요. 수퍼히어로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가 이미 나온거나 다름 없었죠.


요약 정리로 느껴지는 진행 방식 역시 크게 달라보일 것은 없었습니다. 덱빌딩을 통해서 공개되는 악당 캐릭터와 싸우는 방식은 이미 '어센션' 시리즈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고요. 그 과정에서 공통의 적과 싸운다는 것이 약간의 협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 역시 '어센션' 시리즈와 비슷. 참고로 [레전더리 마블 덱 빌딩]과 [레전더리 악당들 덱 빌딩]의 협력 요소는 일반적인 협력 게임만큼은 큰 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이후 '레전더리'라는 게임 시스템으로 일컫어지게 될만큼 큰 히트를 거뒀습니다. 큰 그림상으로는 덱빌딩의 방식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지만, 5가지의 카드 클래스 연결로 연계효과가 순식간에 일어나는 진행, 협력게임등에서 볼 수 있는 위기관리 방식-악당들의 카드가 점점 밀리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시 참신했습니다. 또, 납치되는 행인들이라던지 중간에 터지는 이벤트들 역시 덱빌딩 진행과 협력 게임의 이벤트 발동 진행을 잘 혼합했고요. 진부한 테마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두번째 스탠드 얼론을 영웅이 아닌, 악당들을 주인공으로 한 위트도 사소한 듯 하지만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레전더리 시스템'의 두 번째인 [레전더리 악당들]이 테마의 전환으로 신선한 환기를 했다면, 그 다음 작품인 [레전더리 인카운터 : 에일리언 덱빌딩 게임]은 테마와 시스템 모든 면에서 변화를 주어서, 기존의 '히어로 버전'을 즐겼던 팬들, 그리고 신규 유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알려진대로 이 게임은 1979년에 1편이 나온뒤, 거의 20여년 동안 모두 4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테마로 한 게임입니다.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빗 핀처, 장 피에르 주네같은 개성 강한 명장 감독들이 돌아가며 메가폰을 잡았던 이 SF 시리즈는 주인공인 시고니 위버를 일약 톱스타로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괴물이라기보다는 유령에 가까울 정도로 공포스로운 미지의 생명체 '제노모프'의 이미지는 20세기 SF 영화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죠.

 

 

[레전더리 인카운터 : 에일리언 덱빌딩 게임]은 [레전더리 : 악당들]에서 도입된 변화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턴의 시작마다 악당의 덱에서 한장씩 추가되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그 추가가 비공개로 이뤄집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에일리언을 잘 묘사한 셈이죠. 여기에 기존 수퍼히어로 버전에서 있었던 점수 제도를 완전히 없애면서 순수한 협력 게임 방식으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또, 단순하게 최종 보스를 격파하는 것으로 승패를 가늠했던 이전 버전과는 달리, 3단계에 걸친 다양한 미션들의 해결이 주어집니다.



게임 진행의 다양성도 다채롭지만, 사실 [레전더리 인카운터]의 최고의 장점은 테마와의 결합성입니다. 특히 게임의 진행 자체가 영화 장면 그대로 재현되는 방식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일례로, 영화 [에일리언] 1편에서는 주인공인 리플리가 모선인 노스트로모와의 분리를 위해서 환기통로를 폐쇄한 뒤, 에일리언을 에어록에서 우주밖으로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게임에서는 우주선의 각 구획이 정해진 뒤 에일리언 카드들이 다가오게 되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환기 통로' 부분의 카드를 제거해야하고, 아울러 '에어록' 부분에 최종 보스 에일리언을 (고용 비용을 사용해서) 데려온 뒤 물리쳐야 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게임을 해본 뒤 영화를 본다 해도 상기가 될 정도의 구성입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에일리언 성체의 전 단계인 '페이스허거'와 이 페이스허거가 인간의 몸을 숙주로 하여 배양시키는 '체스트버스터'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종종 등장하는 에일리언의 알을 처리하지 않으면, 돌발로 공개되는 이벤트에서 페이스허거에게 당하게 됩니다. 한 턴을 도는 동안 자신에게 붙은 페이스허거를 처리하지 않으면, 이후 자신의 덱에는 체스트버스터 카드가 들어가게 되고,  후에 카드를 뽑을때 이 체스트버스터 카드가 나오면 패배하게 됩니다. 혹은 옵션 규칙을 사용해서 체스트버스터로 사망한 플레이어가 다음 턴부터 에일리언 플레이어가 되어 다른 동료들과 싸우는 방식을 채택할 수 도 있는데, 이쯤되면 게임에 대한 재미보다는 이 기막힌 시스템의 구현에 대한 감탄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여러모로 '에일리언'의 세계관에 매료된 팬들에게 끊임없이 손짓을 하는 게임입니다. 영화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의 모든 판권을 얻은 지라, '17세 이하는 게임 플레이시 주의하시오'라는 경고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 캐릭터의 작화들도 팬들에게 어필을 하고 있고, (아예 영화 스틸을 사용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워 하는 의견들도 있지만, FFG의 '왕좌의 게임' HBO 카드 게임 버전에서 도입된 실사 사진의 어색한 적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관된 느낌의 작화가 더 나아 보입니다.) 4개의 시나리오 구성이 각각 영화의 1,2,3,4편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에일리언' 세계관에서 종종 회자되는 명대사들이 카드의 텍스트로 그대로 쓰일 정도로 세심함은 온전히 영화 시리즈 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테마에만 의존하는 그저그런 덱빌딩 게임도 아닙니다. 순수한 협력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플레이어들을 압박하는 설정등이 더 다양해졌고, 자신의 핸드에 있는 카드로 상대의 턴을 도와주는 'Coordinate' 키워드는 이런 협력 시스템을 더욱 강조합니다. 또, 순수한 협력 게임이 되면서 '마블' 시리즈에서 약했던 1인 플레이도 더욱 재밌어졌습니다. '레전더리' 시리즈를 꿰뚫는 다섯 종류의 클래스 아이콘 방식은 초기의 핸드들을 점점 더 복잡 다단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그 재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고요.

 

 

 


출시 후 보드게임 긱에서는 단연 마블버전의 레전더리보다 더 낫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반세기에 걸쳐서 세계관과 캐릭터를 확장시킨 마블보다야, 단 네 편의 시리즈로 응집된 영화의 세계관과 설정이, 어지간한 볼륨의 게임에 오롯이 담겨 있다는 점이 영화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곁가지 없이 협력게임의 충실함에 차근히 다가오는 서스펜스를 잘 구현해낸 재미는 보드게이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게임의 초기 배치가 너무 복잡하고, 초보자가 플레이 하기에는 미션 성공이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할 때의 임팩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처음 4개의 시나리오를 끝내고 나면 약간은 김이 샐 수 도 있겠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높은 난이도와 그로 인한 미션 달성 실패의 높은 확률이 반복 플레이의 도전성을 가미시켜 준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점은 차후 확장에서 보강될 수 도 있겠지만, 이 게임 자체가 4편의 영화 시리즈의 테마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확장이 나올 수 있을지, 혹은 그런 확장들이 과연 필요하기나 할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옵션 규칙인 '배신자' 모드로 진행을 한다면, 소장과 플레이의 유효기간은 좀 더 길어질 수 도 있고요.

 

 


확실한 것은 이 게임 [레전더리 인카운터]를 통해서 '레전더리 시스템'이 수많은 덱빌딩 게임의 프랜차이즈들 사이에 자신들의 족적을 분명하게 남겼다는 점입니다. 물론 카드상의 많은 텍스트는 국내 유저들에게 다소 어려운 걸림돌이 될 수 도 있겠지만,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게임의 재미가 이를 모두 상쇄합니다.' 아울러 그 재미가 이 게임에 향한 호평들이 또 다른 덱빌딩 게임에 대한 그저그런 호들갑이 되지 않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