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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속고 속이는 음모의 연속 [시타델] (Citadels/2000)

 

[시타델]은 독일 태생의 유명한 카드 게임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감추고 진행하는 역할 게임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카드게임은 그 구성물이 단촐한 편이고 이 시타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카드게임과는 뭔가 좀 안맞아 보이는 '도시 건설'이라는 컨셉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컨셉 역시 치장일 뿐입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의의는 상대방을 훼방놓는 '딴지'에 있으니까요.


쉽게 말해 천사같은 맘으로 하다보면 이 게임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악랄하게 혼자서 쭉쭉 나간다고 해도 역시 다른 사람의 타겟이 되고요. 하다보면 은근히 열받고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게임으로 '딴지 게임의 진수'라고 소문날 만한 작품입니다.

 

게임은 자신이 선택한 한 명(2.3인용일 경우는 두 명)의 캐릭터의 임무를 정해진 차례로 수행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독특하게도 직업별로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캐릭터를 선택하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푸에르토리코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다만 [시타델]의 경우, 캐릭터는 전적으로 선택한 플레이어만의 몫이고, 상대가 무슨 캐릭터를 잡았는 지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해당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 여기에 모든 캐릭터가 행할 수 있는 금화/건설카드 획득과 건물 짓기를 수행하며 게임을 진행해 나갑니다.

 

게임은 어느 한 플레이어가 8개의 건물을 지으면 끝납니다. 한 차례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이 한 채이므로 그냥 무난하게 8턴을 돌며 건물을 지으면 될 듯 하지만...

 

사실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각 캐릭터들의 능력 때문이죠. 8개의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능력은 자신의 개발보다는 다른 플레이어를 향한 '딴지'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상인'이나 '왕', '주교', '건축가'같은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딴지성향이 거의 없지만, 그 외의 캐릭터들은 플레이어들간의 공기를 아주 무겁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도둑'은 특정 캐릭터의 금화를 모두 뺏고, '암살자'는 아예 대상 캐릭터의 턴을 제거합니다. '장군'은 금이야 옥이야 지어놓은 다른 플레이어의 건물을 파괴하고요. 이러다보니 '조금 잘 나간다 싶은' 플레이어를 향한 견제가 끊임이 없습니다. 승리를 목전에 앞둔 상태에서 자기 차례가 소멸한다던가, 돈을 뺐긴다던가, 건물이 파괴되는 것은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죠.

따라서 앞서 나갈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집니다. 암살자를 선택해서 아예 기회를 없애던지, 도둑을 사용해서 돈을 뺐어온다던지, 아예 장군을 사용해서 확실하게 건물을 파괴 한다던지... 아울러 상대들 역시 앞선 캐릭터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둡니다. 그러다보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위에 더 높이 나는 놈...식의 끝없는 예측들이 중첩됩니다.


그래도 건축게임이랍시고 건물을 이용한 기능들도 어느정도 게임에 도움을 줍니다. 특정한 색깔의 캐릭터를 사용하면 자신이 지은 건물중 같은 색의 건물은 그만큼의 보너스를 줍니다. 또 특수한 건물들로 구성된 보라색 건물은, 고유의 특별 기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종류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녀서, 건물때문에 전략의 큰 가늠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가끔 결정타를 날릴 기회도 주므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룰이 어려운 게임은 아닙니다. 순서대로 진행되는 캐릭터의 능력발동에 대한 상관관계를 체감해야 하는 것이 게임을 이기기 위한 필수 요소이고요.



일반적으로 [시타델]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인원-최대 7인플이 가능합니다-으로 플레이해야 한다고 하지만, 의외로 2인이나 3인 플레이도 재미있는 편입니다. 여럿이 할 때 느껴지는 재미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아예 게임의 분위기가 색다르게 변하거든요. 한 턴에 두 캐릭터를 잡고 진행하고, 그 덕분에 두 방의 공략이 모두 먹히거나, 혹은 자신의 캐릭터가 모두 '당하는' 상황이 되면 분위기는 오히려 다인플때보다 더 묘해지기도 합니다.

 

농담을 다큐로 보는 감성의 소유자라면 '딴지 게임'의 전형인 [시타델]은 그저 웃으며 플레이 할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여기에 선견지명 있는(?) 딴지가 너무 계속 이어지면 예상보다 게임이 길어진다는 약간의 단점도 있고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점은 그만큼 '딴지 게임'으로서 [시타델]이 만만치 않은 재미를 준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