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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tory Board -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문턱


본 칼럼은 다이스 매거진 7호 (2015년 4월)에 송고한 내용입니다.

다이스 매거진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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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문턱"


보드게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할 이야기가 많죠. 아마 다이스 매거진에서도 따로 특집으로 몇 번 다루게 되지 않을까요. 최근 활발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많기에 이 이슈는 갈수록 뜨거운 화제가 될 겁니다. 오늘은 간단한 이야기 하나만 해보죠.


꽤나 많은 아마추어 보드게이머들을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한창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선을 해나가려는 이들도 있지만, 때로는 본인의 기준에서 완성된 게임을 가져와서 출판을 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목표의 목전에 다다라서 왔으니 얼마나 기분이 뿌듯할까요. 


하지만 그들에게 늘 긍정적인 답을 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아요. 안타깝게도 말이죠.


부정적인 답을 드리면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깊이 실망하시는 분도 계시고, 호기롭게 개선해서 다음을 도모하시려는 분도 계시고, 불세출의 명작을 가져왔는데 알아봐주지 못한다며 진노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쨌든 ‘아니다’라는 답에 대한 반응이니 답을 해주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죠.


그러니 이런 경우가 많지 않도록 하려면,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이를 위한 제언들은 진짜 책 한권을 다써도 모자를 수준입니다. 그에 대해서 더 훌륭한 이야기를 해줄 분들도 많을 테고요. 


하지만 적어도 실질적인 제작이 달성되도록 해 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을 떠올려보자면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나만의 보드게임을 만드시려고 하실 분들은 한 번쯤 염두하셔도 좋을 이야기들입니다.



첫 번째는 정말로 많은 게임을 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언가 기시감이 들면서 아울러 부족한 게임을 가져온 분들의 경우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은 ‘다른 게임들은 많이 해보셨어요?’이고 그 경우 상당히 많은 분들이 해본 게임의 종류가 10종류도 안될 경우가 많습니다. 한 두 종류만 해본 분들도 많고요. 보드게임은 재미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드게임 자체’를 처음 경험해본 순간 그 재미 못지 않게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겨서 사실상 이 바닥(?)이 꽤나 큰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 곧장 디자인을 해보는 것이죠. 이런 분들께는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세상에는 수만가지의 보드게임들이 있고, 한 해에도 몇 백개가 나온다는 이야기만 드려도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인지를 하시는 편입니다.


‘좋은 게임의 디자인을 위해서 게임을 많이 해봐야 한다’에 대한 중요성은 다음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라서요.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 요소입니다. 이것은 많은 초보 디자이너들의 열정이라는 도화선에 제대로 불을 지피는 요소입니다. 이 요소는 당장 자신의 프로토타입을 들고 회사를 찾아가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인정도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요소기도 합니다.


이는 ‘충분하지 못한 테스트 플레이’입니다. 완벽한 게임이 되기 위한 테스트 플레이의 횟수에 대해 규정된 것은 없지만, 테스트 플레이가 많을수록 게임을 바라보는 객관성이 늘어나고 좀 더 개선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상식적인 부분입니다. 플레이를 위해 함께할 사람은 전문가여도 좋지만,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전자가 게임에 대한 로직을 테스트 할 수 있다면, 후자는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체크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테스트 플레이 휫수가 비교적 부족한 상태로 옵니다. 더군다나 함께 플레이 해본 이들은 팔이 안으로 굽고 굽을 수 밖에 없는 친한 친구 혹은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보드게임은 게임입니다. 아주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이상, 게임이란건 최소한의 지적유희를 주는 것이기에, 많은 지인들은 테스트 제품을 만들어 온 것에 대해 대견하게 여길것이고, “재밌다”는 이야기를 아낌없이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막 개발 단계인 게임의 싹수가 흥미로와서 ‘재밌다’라는 평가를 해주는 것과, 이 게임이 상용화되면 많이많이 살 것이다라는 의견은 엄연히 다른 의견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양산될 게임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국내의 한 유명 제작사의 개발팀의 이사님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재밌네.’라고 하는 것은 재밌다는 뜻이 아니다. 진짜 제대로 된 반응은 ‘한 번 더 해보자’ 혹은 ‘이거 어디서 파냐?’여야 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관점같지만, 적어도 상용화 게임을 만들려 하는 디자이너라면 위의 이야기는 금과옥조로 삼을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초보 디자이너들은 지인과 가족들의 ‘재밌다’는 평가에 부화뇌동하여 달려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관계자들한테 ‘친구들은 재밌다고 했는데!’라고 항변하며 섭섭해 합니다. 


그러나 어쩌나요. 나만의 보드게임을 만들었을때 응원해주며 구입해줄 지인과 가족들이 천 명, 이천명이 넘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는한 여러분의 게임은 말 그대로 가판대에 혹은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수많은 게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니, 좋은 게임을 만들고저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나의 게임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줄만한 또 다른 누구입니다. 몇 번을 해도 ‘재밌네’라고 얘기해 줄 지인들로부터는 성원과 응원이 계속 필요할 것이고요.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이 늘어나면서 디자이너로서 꿈을 펼치려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문턱 역시 만만치 않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초보 디자이너들에게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역량을 당장 키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올바른 방법도 아니고요.


하지만 나의 초보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과 테스트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문턱을 넘는 역량조차도 아닙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 문턱이 만만치 않음을 인지하는 과정 정도에 다름 아닙니다. 내가 오를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봐야죠. 혹독한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으로 그 바라봄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다음 기회에 ‘많은 게임의 체험’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