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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짧고 굵은 왕국 세우기 [킹덤 빌더] (Kingdom Builder/2011)



[킹덤 빌더]가 처음 공개 되었을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 것은 당연히 디자이너인 도날드 X 바카리노의 이름값이었습니다. 당연하겠죠. 그는 최근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 된 덱 빌딩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를 만든 디자이너고, 덱 빌딩 게임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소산인 [도미니언]의 확장 외에는 별다른 작품을 내놓지 않았던 그가 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을 내놓는다 하니 화제의 반열에 오른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2011년 에센에서 바카리노가 발표한 작품은 [킹덤 빌더]와 [사악한 (Nefarious)] 두 개였습니다. 하지만 메이져 제작사인 퀸 게임즈의 배급력 버프를 받은 [킹덤 빌더]가 상대적으로 더 화제의 작품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높아진 기대치 때문인지, 실제로 [킹덤 빌더]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에센의 페어플레이 차트에서도 순위권인 18위에 들었지만, [도미니언]의 작가의 차기작 성적으로는 실망스러웠죠.



 
확실히 [킹덤 빌더]는 엄청난 재미를 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게임 진행은 [도미니언]보다도 훨씬 단순한 편입니다. 게임의 홍보 태그라인은 조립형 보드이기 때문에 수백가지의 조합으로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워낙 규칙이 간단하다보니 '그럼 보드마저 조립형으로 안 만들었다면 어쩌려고?'라고 되묻고 싶을 정도죠.


하지만 그 간단한 규칙 때문에 오히려 게임성이 너무나 평가절하 된게 아닌가 싶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관건은 매 게임마다 조합되는 보드가 아닌, 점수를 규정하는 3장의 왕국 카드입니다. 10종류 가운데서 3장만 선택해서 진행하지만, 사실 이 카드의 숙지와 활용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좌우될 정도니까요.



지형 카드



 

게임은 무작위로 선택된 4개의 보드를 연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보드 위에는 모두 9종류의 지형이 6각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턴에 지형카드를 한 장 공개하고 공개된 카드의 지형 위에 자신의 집 마커 3개를 놓을 수 있습니다. 집을 놓을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지형에 놓든 자신이 기존에 놓은 지점과 연결해서 놓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수 타일의 기능을 저렇게 상시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수 타일은 지형 카드의 사용 전, 혹은 후에 쓸 수 있습니다.



아울러 게임 중 특정 지역에 인접하게 집을 놓으면 해당 지역의 타일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타일은 매 턴마다 자신의 집을 확장 혹은 이동시킬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교대로 집을 놓아가면서 어떤 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집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진행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범위에 자신의 집을 최대한 많이 놓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처럼 보이는 게임입니다. 그러다보니 타일의 능력도 '이동'보다는 '추가'가 더 효율적으로 보이고 이 때문에 타일의 사용에 있어서 발란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습니다.

 


검은색 플레이어는 이제 저 밭 타일을 가져가서 기능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킹덤 빌더]는 집을 많으 놓는 것만으로 점수 획득을 꾀하기는 힘든 게임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집이 닿아있는 성채 한 개당 금(승점) 3개를 얻게됩니다. '성채에 올린 집마다'가 아닌 '집이 닿은 성채마다'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량만 늘린다고 남들보다 특별히 더 점수를 받을 여지는 없죠.
 

모든 보드의 뒷면을 점수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장의 왕국 카드들. [킹덤빌더]의 영문 텍스트는 저게 전부입니다.




 
여기에 더 많은 점수로 연결되는 왕국 카드들도 변수가 됩니다. 왕국 카드들은 군집가운데서 나뉘어지는 점수, 혹은 특정지역에 인접된 점수, 전체적인 보드상에서 가능한한 넓게 분포된 상황에 따라서 점수를 받는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치기 때문에 많이 놓는 것만큼이나 기존의 집을 효과적인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게임을 할때마다 3장의 왕국 카드 중 자신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카드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결국 승패는 집을 많이 놓는 것 보다는, 목표로 삼을 적절한 카드의 선택과 그에 맞는 집의 배치, 아울러 다른 카드들에서도 적당하게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분배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여러번 플레이를 하다보면, 게임 종료 후 사용한 집이 다른 플레이어보다 현저히 적음에도 승리를 거머쥐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왕국 카드에 맞는 다양한 배치의 변주는 아무래도 반복 플레이를 할 수록 체감도가 커지는 편입니다.


다만 이런 무난한 진행때문에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공개되는 왕국 카드의 점수 조건이 다른 한 쪽을 어느정도 수렴하는 상황이 생기면 플레이어가 뜻하지 않게 고득점을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티켓 투 라이드]에서 엉겁결에 뽑은 목표 카드가 이미 완성된 라인에 포함되어 있어서 예상밖의 점수를 얻는 경우와 비슷하달까요? 물론 숙련자라면 왕국 카드들이 오픈 되었을때 이런 교집합을 잘 파악하겠지만, 그렇다해도 초심자가 숙련자를 쉽게 따라잡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이런 점이 진입장벽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나쁜건 아니겠지만, 누구에게는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죠.





오른쪽이 '영문 카드' 왼쪽이 '기본 카드' !?@#?!$@#


하지만 정작 제일 아쉬운 것은 바로 콤포넌트입니다. 콤포넌트의 질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킹덤 빌더]는 [티켓 투 라이드]나 [카탄] 시리즈 정도의 박스 크기로 제작 되었는데, 게임의 간략함이나 구성품의 비중으로 보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작게 나와도 될법한 게임입니다. 하다못해 여러 장의 조립형 보드가 들어가기 때문에 가로세로 크기는 어쩔 수 없다해도 박스 높이 정도는 좀 낮게 해도 될 법했어요. 게다가 열 장밖에 안되는 왕국카드는 언어 없이 아이콘으로 구성하고 부연 설명을 설명서에 넣는 방식으로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큽니다. 질도 좋은 카드를 여러 언어로 실느라 카드 장수가 늘어났고, 특히 기본 카드의 언어를 '영어'로 하고, 여기에 추가로 또 '영문' 카드를 넣은 것은 -저희가 미처 알 수 없는 배급의 문제가 가미된 건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봐온 보드게임 콤포넌트들 가운데 전무한 독특한 경우입니다. 이런 부분이 게임 가격을 더 저렴하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인 시도였을 겁니다.


 

아무튼 다소 부풀림된 콤포넌트와 가격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킹덤 빌더]는 제법 괜찮은 게임입니다. 첫 인상으로 규칙에 대한 인상이 파악된다면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게임이죠. 게다가 그런 반복 플레이에 유리하도록 게임 진행 시간도 짧은 편이고요. 게임의 진행에 있어서는 [도미니언]과 전혀 닮은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소하게 반복 플레이로 재미를 알아갈 수 있다는 그 '속성'으로 본다면 [도미니언]의 작가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충분히 수긍할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