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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화마와 싸우는 소방수들의 이야기 [플래시 포인트] (Flash Point / 2011)


 [플래시 포인트]는 그간 작은 사이즈의 카드 게임들을 만들어온 미국의 인디 보드 게임즈의 첫 '보드게임'입니다. 게임 제목인 '플래시 포인트'는 화재의 원인이 되는 '발화점'을 의미합니다. 제목과 박스 아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을 테마로 한 협력게임입니다.


일단의 전문가들이 위기를 위해 힘을 합치고 그 배경이 현대라는 점에서 [판데믹]이 많이 연상되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 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게임의 위기 상황 조성이나 해결에 있어서 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눈에 띄죠. 이런 차별화는 [판데믹]이나 [카멜롯의 그림자]를 한 카테고리로 묶은 뒤, 이 게임들과의 거리를 꽤나 멀어지게 만듭니다.

[플래시 포인트]는 기본 규칙과 더 쉽게 플레이 할 수 있는 가족용 규칙 2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두 종류의 규칙의 간극이 꽤나 큰 게임입니다. 사용하는 콤포넌트의 비중이나 가미되는 규칙의 볼륨이 그저 한 두가지의 옵션이 들어간 것이 아닌, 아예 다른 게임의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에요. 가족용 규칙이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라면, 기본 규칙은 못해도 [판데믹] 정도에는 달하는 복잡성이 있습니다.


물론 굵은 뼈대는 가족용 규칙에 따라갑니다. 플레이어들은 6x8 칸으로 구성된 집에 투입됩니다. 각각의 지점에는 불이난 상태를 알리는 화재토큰이 있으며, 아울러 구출해야 할 조난 토큰들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턴마다 4회의 액션을 이동, 화재진압 등에 사용하며 조난 토큰으로 접근합니다. 플레이어의 마커가 조난 토큰에 닿았을 때 조난자 혹은 잘못된 신호(다시말해 꽝)의 여부가 공개되며 조난자일 경우 건물 밖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게임은 7명의 조난자를 구출하면 승리하고, 4명의 조난자가 죽게되면 패배합니다.

 

네 번 동안 소진하는 액션의 종류는 다 생각할 법한 종류들입니다. 이동, 혹은 문 열기, 막혀있는 벽을 깨기 등이죠. 희생자를 엎었다던가, 불을 통과할때 액션의 소진이 더 되는 것 역시 생각할 법한 요소들이고요. 하지만 이번 턴에 사용하지 않은 액션은 토큰을 가져와서 계수할 수 있고, 그만큼을 다음 턴에서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은 참신합니다. 이를 통해 그야말로 1보 후퇴, 2보 전진의 액션 사용 효율을 도모할 수 도 있고요.


한 편 턴마다 실행해야 하는 화재 확산은 단순합니다. 6면체 주사위와 8면체 주사위를 동시에 굴려 해당하는 지점에 연기가 나게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기는 확산의 개념은 -분명히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소임에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만약 주사위 좌표가 화재 토큰에 인접했다면, 놓여지는 연기 역시 화제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주사위 좌표 위가 이미 화재 상태라면 폭발이 일어나고 해당 화재는 4면으로 확산됩니다. 이 결과 화재의 반경이 넓어질 수 도 있고, 안전 지대에 있다고 생각했던 소방관이나 조난자가 화염에 휘말릴 수 도 있으며 (조난자일 경우 죽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벽이 파열될 수 도 있습니다.


벽이 파열되면 문이 없어도 오갈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니 좋은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으나, 정해진 파괴 토큰이 다 소진되면 -다시말해 보드위에 모든 파괴 토큰이 올라가면 집이 무너지는 것이고 이는 또다른 패배조건이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역할 분담을 통해서 화재 진압과 조난자 구출을 병행해가야 합니다.

 

기본 규칙은 당연히 게임의 난이도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합니다. 인화물질과 발화점들이 생겨 화재 발생이 더욱 무작위로 일어나고, 조난자들도 단순히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구급차에 실어 보내야만 완벽한 구출로 인정이 됩니다. 여기에 대응하여 각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기능의 캐릭터들을 사용하는 규칙이 추가됩니다.

 

그 가운데는 조난자 이송을 쉽게 만드는 의무병이라던지, 벽 파괴를 더 쉽게하는 파괴 전문가 등 테마와 잘 맞아 떨어지는 다양한 능력들이 있습니다. 특히 일정 구역에 살수를 하여 인근의 화재를 일거에 진압하는 소방차 운전수는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아주 유용한 캐릭터입니다. 또 캐릭터 운용 게임치고는 독특하게도 플레이 중 캐릭터를 바꾸는 요소까지도 있습니다.

 

[플래시 포인트]의 아쉬운 점은 어찌되었든 발화의 무작위성이 주사위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점입니다. 카드로 위기상황을 만드는 경우 덱의 구성에 따라 어느 정도로 통제의 여지가 있지만, 주사위의 경우에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죠.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도 게임에 따라서 난이도가 쉽거나 어려움의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화점이 사방에 난무하는 기본 규칙으로 진행할 경우 주사위의 무작위성을 커버할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가는 편이고 이렇게 높아진 난이도는 캐릭터 기능의 효율적인 운용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록 기본 규칙으로 즐기되, 가족규칙은 입문자들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면 [플래시 포인트]는 그 즐거움의 폭이 훨씬 커질 수 있는 게임입니다. 간단한 규칙에서도 꽤나 잘 맞아 떨어지는 화재 진압의 테마와 더불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