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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성스러운 도시. 그리고 분쟁의 도시 [예루살렘] (Jerusalem / 2010)


보드게임도 확실히 대중문화의 일부인지라 유행을 타는 것 같습니다. [케일러스], [아그리콜라]를 필두로 최근 몇 년간 일꾼 놓기 게임이 유행을 타고 있는 것도 그 일례로 볼 수 있고요. 

그 유행 가운데 영향력 게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많은 보드게이머들이 주지하다시피 그 으뜸으로는 10년도 넘은 게임인 [엘 그란데]를 빼놓을 수 없겠죠, 그 외에 [엘 그란데]와 유사한 [샤를마누]도 있고요. 

사실상 영향력 게임의 기본 메커니즘은 간단한 편인데, 특정한 지역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속한 큐브나 유사한 콤포넌트들의 갯수로 지역내에서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변주가 가미되죠. [샤를마누]가 조립형 보드방식이나 팀플레이의 적용을 그 변주로 삼고 있다면, [엘 그란데]에서는 다양한 카드 운용을 들 수 있죠.


최근들어 조용하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또 하나의 영향력 게임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중동지역에서 풍운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개신교를 비롯해 유대교, 이슬람교가 성지로 받들고 있는 곳이죠. 지금의 예루살렘은 종교분쟁 덕택에 바람 잘날 없는 곳인데 사실 이런 부침많은 역사는 중세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십자군 원정의 여정에서 예루살렘은 가장 큰 이슈이기도 했죠. 보드게임 [예루살렘]은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십자군들의 입성에 반발하는 무리들은 이제 예루살렘의 도처에서 자신의 부와 명성을 쌓아 올리며 도시 최고의 집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향력 게임은 그야말로 제한된 지역에서 한데 뭉쳐 자웅을 가리는 것이 제 맛인지라 인원수가 많은 것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2~4명으로 비교적 인원수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2인플도 나름 쏠쏠한 재미를 주기까지 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예루살렘 내의 여섯 구역과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왕궁은 물론, 사원과 시장, 성내와 귀족사회 등 각각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얻는 혜택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혜택을 최대한 명성점수로 환원시켜야 하고 이 점수를 통해 탑을 쌓아야 합니다. 물론 탑을 가장 높이 쌓아올린 사람이 승자가 됩니다.


좌로부터 대신, 재무장관, 사령관, 제독. 카드 하단에는 사용할 수 있는 고관의 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5라운드로 구성된 게임의 첫 단계는 관료를 선택하는 단계입니다. 대신, 재무장관, 사령관, 제독 이렇게 네 종류의 관료가 있는데, 플레이어들은 경매를 통해서 원하는 관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각 관료 카드의 하단에는 이번 라운드에서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고관의 인원수가, 상단에는 관료별 혜택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신, 재무장관, 사령관, 제독 순서대로 라운드가 진행되는데 영향력 게임이니만큼 나중에 플레이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더 유리해지게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순서상으로 앞에 있을 수록 사용할 수 있는 고관이나 기타 혜택이 더 풍성한 편입니다.



관료카드를 획득하면 라운드마다 무료로 주어지는 액션카드와 관료카드에 명시된 인원수의 고관이 가용한 상태가 됩니다. 이제 관료 순서대로 보드 상의 지역에 원하는만큼의 고관들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고관은 이번 턴에 얻은 고관에 지난턴에 남긴 고관을 합한 만큼만 가능합니다.



초반에는 물론 이렇게 한산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사용할 수 있는 고관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썰렁하게 마련입니다. 또 한 곳에 집중투입을 해야할지 분산투입을 해야할지의 전형적인 고민도 해야하고요. 지역에 투입된 고관들은 이벤트나 액션을 통하지 않는한 계속 그 곳에 머물기 때문에 라운드가 진행될 수록 지역 점령을 위한 고관 큐브들의 밀도가 점점 커집니다.



액션카드들


3 비잔트로 고관 한 명을 곧장 가용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고관 투입 방법을 단순히 큐브로 놓는 방식에만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관료들의 특수 액션이나 관료 선택시 받는 액션 카드의 사용, 그리고 3비잔트(통화단위)를 내고 고관 1명을 가용상태로 바꾸는 부가적인 액션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액션카드의 경우에는 아껴두었다가 한꺼번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먼저 고관을 놓은 플레이어로서는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하지만 선을 잡은 플레이어 일수록 사용할 수 있는 고관 큐브들이 많아지고, 영향력 판정시에 큐브의 수가 같으면 우위에 서기 때문에 각각의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남작 (노란색 폰)


플레이어 별로 한 명씩 있는 남작은 [예루살렘]에서의 영향력 전쟁을 단순한 인해전술 일색의 분위기를 바꿔주기도 합니다. 지역마다 필요한 인원수 이상이 투입될때 라운드 마다 한 차례 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남작은 이후의 플레이어의 고관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권력을 행사합니다. 아무래도 관료 차례에서 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죠.


고관 투입이 끝나면 각각의 구역별로 얻는 혜택이 있습니다. 판정전에 한 명의 큐브를 이동시킬 수 있는 '다윗의 탑'을 비롯해 다양하게 부여되는 구역별 혜택 수여가 끝나면, 이제는 지역별로 영향력을 판단해서 역시 해당지역 점령의 포상을 얻습니다. 

 

시장지역의 포상은 고관들과 돈이 조합을 이루고...

 

사원쪽은 오로지 인력들입니다.


지역별로 포상의 특성이 다양한게 특징인데, 예를 들어 왕궁에서의 영향력 포상은 명성점수, 사원의 포상은 추가할 수 있는 고관의 수, 그외의 지역에서는 명성 점수와 고관, 비잔트가 다양하게 섞여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게임의 승패를 위해서는 명성점수를 얻는 것이 최고겠지만, 원하는 지역을 쉽게 획득할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또 다음 라운드를 위한 대비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도 현명한 전략입니다.




라운드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명성 점수를 사용해서 탑을 쌓아야 합니다. 탑의 높이는 이 게임의 실질적인 승패를 가늠하는 실제 점수입니다. 정해진 명성 점수를 탑을 한 층 높이는데 사용할 수 있는데, 탑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필요한 명성점수가 많아집니다. 따라서 명성 점수를 얻을때도 탑을 쌓기에 적절한 점수인지, 아울러 탑을 높이지 못할 경우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 부가적인 혜택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탑. (좀 썰렁하죠?)


명성 점수 자체가 승패를 가늠하는 단편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이 게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듭니다. 아울러 일정 점수 이상일때마다 탑이 올라가기 때문에 게임 종료 후 탑의 높이 차이가 거의 없거나 같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타이 브레이크인 명성 점수나 마지막 라운드의 관료 카드 순서 역시 무시못할 요인이 됩니다.



액션 카드가 능동적인 상황 변화를 만들어간다면, 2,3,4라운드에서는 이벤트가 발동됩니다. 계승식, 특별세, 전쟁 등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대소사들이 특정한 지역의 고관들 배치를 일순간에 바꿔버리는 이 네 종류의 이벤트 덕분에 특정 지역에서의 절대 강자가 없게하는 요소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액션/이벤트 카드들은 텍스트도 없을 뿐더러 직관적입니다. 액션 카드의 경우 수량이 많아뵈지만 대부분 부가적인 설명이 없이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에 플레이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간만에 보는 잘 만들어진 영향력 게임입니다. 일견 보면 잔룰들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상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레 익혀지게 되고, 그래도 헷갈릴 경우에는 가림막 뒤의 요약표만 봐도 진행이 용이합니다.

2인 플레이는 보드상의 6구역 중 4구역만 사용하고 그와 관련된 카드를 제거한 뒤 관료 가운데 사령관과 제독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4인 플레이 기준으로 첫 게임이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이후의 플레이에서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만큼 게임 진행도 신속한 편입니다.



구성품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게임내의 아트웍은 무척 훌륭하며 보드상의 직관적인 부분 역시 잘 조율이 되어 있어서 가볍게 플레이하기에 제격인 영향력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