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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략만큼이나 필요한 연기력 [노팅엄의 치안관 (Sheriff of Nottingham / 2014)]






[노팅엄의 치안관]은 2006년 독일 코스모스사에서 나온 게임 [국경에서 (Hart an Der Grenze)]의 리메이크입니다. 굉장히 재밌고 독특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원작 코스모스 버전은 영문 버전이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원작도 많은 양이 생산되지는 않았었지요. 보안관 뱃지라던지 상품을 담는 철제 케이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었고, 구성품만큼이나 게임도 재밌었으니 스테디 셀러가 될 법했는데, 이상하게도 초판을 끝으로 구하기가 힘든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 명맥은 이어져갔습니다. 브라질의 제작사인 갈라파고스 요고에서 [Robin Hood]란 제목으로 2011년에 재판되었는데, 제목처럼 테마가 로빈 후드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브라질 사람들이었고, 원작의 테마가 남미 국경지대를 지나는 밀수꾼들의 이야기였으니 다분히 풍자의 요소가 컸을텐데, 정작 브라질 회사에서 출판을 하게 되니 그 테마를 그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사실 [로빈 후드]는 제목과는 달리 진짜 로빈 후드와는 관련이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오히려 부패한 노팅엄의 영주 존의 이야기였죠. 원작인 [국경에서]의 경찰관이 바로 존 왕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메이지 워즈]의 제작사인 아케인 원더스는 재판을 내면서 아예 게임 제목을 [노팅엄의 치안관]으로 바꾸었습니다. 꽤나 매니악한 게임인 [메이지 워즈]를 생각하면 아케인 원더스가 이 게임을 제작한 것이 의외이긴한데, 제작사에서는 ‘다이스 타워 엣센셜’이라는 라인업의 일환으로 본 작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가족 게임 수준의 쉬운 작품들을 계속 낼 예정인듯 합니다. 





테마와 구성품이 바뀌면서 많은 이들의 호불호도 갈릴 것으로 예상된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코스모스 버전의 틴 케이스가 유지되지 않을 것은 당연했고 (실제로 포함된 주머니는 [로빈 후드] 버전에서 채택된 구성품을 계승한 것입니다.), 현대의 테마가 중세로 바뀌었으니까요. 이를 의식한 듯 설명서의 서문에는 원작의 디자이너였던 세르쥬 할라반과 안드레아 차즈가 아케인 원더스 버전의 리메이크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감사한다는 인삿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들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주머니에 담고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때 한 명의 플레이어가 존 왕이 되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에게 주머니에 무슨 물건이 담겼는지를 신고해야 합니다. 주머니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은 오직 한 종류의 물품뿐이며 밀수품은 당연히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일뿐, 플레이어들은 원하는대로 주머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고도 거짓으로 할 수 있고요.





치안관 플레이어는 상인 플레이어 한 명씩을 대면하면서 그의 주머니를 검사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합니다. 검사를 한다면 상인 플레이어는 주머니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물품 카드를 공개합니다. 이때 신고한 것과 같은 물품이 있다면 오히려 치안관이 그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지만, 신고와 다른 물품이 있다면 그 물품들을 뺐길뿐더러, 벌금도 내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수를 하는 이유는 걸리지 않았을 경우 밀수품의 보상 가치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죠.


게임의 재밌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뇌물입니다. 상인 플레이어는 뇌물로 협상을 해서 검사를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뇌물을 받기로 했다면, 치안관은 주머니를 보지 않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검사를 피하면 주머니를 열고 자신이 가진 물품들을 공개한 뒤, 모두 자신의 소유로 챙길 수 있습니다. 게임은 모든 플레이어들이 치안관 역활을 두 번씩 진행하면 (3인일 경우에는 3번씩) 끝이 납니다. 이후 적법한 물품 4가지의 종류별로 최다 획득자와 차선 획득자들을 결정해서 추가 보너스를 받은 뒤 가장 많은 돈을 가진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국경에서]와 비교하면 몇 가지 요소들이 살짝 달라졌는데, 이 변화가 무척 훌륭합니다. [국경에서]에서 뭔가 프로토타입에서 개선해야 될 점처럼 여겨졌던 요소들이 모두 해결된 느낌입니다. 


우선 시장 단계가 추가가 되어서 플레이어들이 덱을 좀 더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치안관으로 하여금 약간이나마 추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턴에 한 명만 검사할 수 있었던 규칙이 모든 플레이어를 검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상인으로서는 긴장감이 늘 유발되게 되었고, 치안관으로서는 한 곳에서 실패해도 다른 곳에서 만회할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죠.


마지막으로 게임 종료 후 최다 획득 상품의 규칙이 대폭 간소해졌습니다. 원작에서는 라운드마다 일정 수량을 구분해서 비공개로 챙겨놓은 뒤 게임 종료시에 판정을 했었지만, 본 작품에서는 그냥 모든 물품들을 누적해서 정해진 액수만을 보너스로 받게 했습니다. 단, 차점자도 받을 수 있게 해서 점수의 편중도 막았고요. 게임중에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물품들 확인이 가능하게 되니, 나름의 목적의식(?)도 더욱 분명해 졌습니다.


여기에 상품의 종류별로 달랐던 벌금을 모두 일원화 했습니다. 따라서 뇌물등을 고려할때의 계산이 다소 간소해졌습니다. 





결국 원작에서 ‘기억하기 힘든 짜잘한 규칙’처럼 여겨졌던 부분들이 모두 제거 되었습니다. 사실상 게임의 로직보다는 플레이어의 행동에서 재미를 얻는 스타일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이런 규칙의 간소화는 좀 더 접근성을 강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한편 어느정도 익숙해진다면 추가로 포함된 ‘왕실 물건’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고요.



그 결과 게임을 진행하면서 예측할 수 있는 부분들이 어느정도 생겨났습니다. 게임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하게 플레이어간의 점수 격차가 무척이나 컸던 원작에 비해, 비교적 점수 격차가 좁아진 것도 아마 이런 변화에 기인한 것이겠죠. 







그러나 [노팅엄의 치안관]은 여전히 전략적인 수 계산 보다는, 플레이어간의 상호반응이나 즉흥적인 연기에 그 재미의 비중을 더 의지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규칙의 변화는 발란스보다는 게임의 문턱을 낮추는데 더 일조하고 있고요. 


뇌물을 바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니 가족게임의 범주에 넣기가 애매할 수 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족 게임’을 쉽게 배우고 왁자지껄하게 즐기는 게임의 범주로 생각한다면 [노팅엄의 치안관]만큼 그 범주에 딱 들어맞는 게임도 찾기 힘들듯 합니다. 게임의 취지에 맞는 훌륭한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