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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히어로클릭스 (Heroclix)' 수퍼히어로들의 세계, 수집 그리고 플레이


히어로클릭스'는 미국의 위즈키즈(WizKidz)사에 의해서 개발된 미니어쳐 게임입니다. '히어로클릭스'에서 사용되는 '클릭스 시스템'은 동사(同社)의 미니어쳐 워게임인 '메이지 나이트'에서 먼저 도입되어 유명해졌습니다. 각각의 캐릭터 미니어쳐에 해당되는 능력치나 체력을 받침대 부분의 다이얼을 돌려서 보정하는데, 이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에 기인해서 '클릭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나이트' 덕분에 게임의 시스템 자체는 이미 워게이머들이나 미니어쳐 게이머들에게 친숙했고, 여기에 미국 대중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코믹스의 팬들까지 이 히어로 클릭스 덕분에 모두 모이게 되었죠.


많이들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의 수퍼히어로 코믹스를 가늠하고 있는 양대 산맥은 마블(Marvel)과 DC입니다. 최근 헐리웃에서 양산되고 있는 수퍼히어로 영화들의 캐릭터들도 거의 대부분 이 출판사들에 속해있고요.


히어로클릭스의 시작은 마블에서 부터였습니다. 2002년 5월 'Infinity Challenge'가 출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DC 코믹스의 캐릭터들도 이 히어로클릭스의 라인업에 가세했습니다. 그 외에 이미지 코믹스나 다크 호스 코믹스 등 다음 규모의 코믹스 캐릭터들도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은 DC와 마블이 차지하고 있는 편입니다. 실제 미국 수퍼히어로 코믹스의 양대산맥을 두 회사가 차지하고 있는 것 처럼요.


그 외에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콘솔 게임인 '헤일로', '스트리트 파이터' 등의 캐릭터를 사용한 히어로클릭스가 나왔고 가장 최근에는 영화 감독 J.J 에이브람스가 리부트한 영화 [스타 트렉]의 영화 버젼 캐릭터를 사용한 보드게임 버젼인 [스타 트렉 : 엑스페디션]도 나왔습니다. (사실 스타 트렉에 이르러서는 그 확장성이나 플레이의 독립성때문에 히어로클릭스의 범주에 넣기 애매한 감도 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히어로클릭스


보드게임에서 미니어쳐 게임의 보편적인 구성은 '코어셋 (Core Set)' 혹은 '스타터셋 (Starter Set)'이라 불리우는 기본판을 갖춘 뒤에 해당 게임에서 플레이 되는 추가 캐릭터들을 더해가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FFG의 [더스트 탁틱스] 시리즈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에픽 박스 사이즈의 [더스트 탁틱스]를 제일 먼저 구매하고, 그 뒤로 '척탄병 미니어쳐' 라던지 '워커' 미니어쳐를 구입해나가는 식이죠.

그러나 '히어로클릭스'의 스타터 셋이나 코어 셋은 나오는 이슈에 따라 여러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제품 표시 가운데 '스타터'라고 표시된 세트를 사면 일반적인 팩보다 많은 미니어쳐들이 들어가 있고, 기본 규칙서, 그리고 종이형태로 되어있는 펼쳐지는 맵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 스타터 만으로도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히어로클릭스에서는 이런 스타터 셋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따라서 구매자들의 선택에 따라서 입문(?)의 지점이 여러곳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스타터 만으로 히어로클릭스를 만끽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추가 캐릭터들을 구매하게 되는데, 비교적 많은 수의 피겨들과 캐릭터 카드, 맵으로 구성된 액션 팩이 있고, 히어로 클릭스 수집의 핵심인 부스터도 있습니다.



부스터는 특정한 캐릭터 시리즈, 혹은 이벤트 시리즈 내에서 각양각색의 피겨들이 랜덤하게 들어가 있는 제품입니다. 평균적으로 2~4개 정도의 피겨가 한 개의 부스터에 들어있는데, 판매점에 따라서 이 부스터를 개봉한 뒤 개별 캐릭터 별로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하지만, 말그대로 밀봉된 상태에서 구매자들에게 무작위로 배송을 하기도 합니다.


부스터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연히 무작위로 배송이 되기 때문에 어떤 피겨가 걸릴 지도 모르고, 여러개를 구입했을 경우에는 같은 피겨들이 들어 있을 수 도 있지만, 그런 가운데 정말 희귀한 피겨들을 '득템'할 수 도 있기 때문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부스터 구입 자체가 게임을 즐기는 것 못지 않은 재미를 줍니다.


아예 특정한 라인업의 부스터가 출시 되었을 경우 10개의 부스터인 '브릭(Brick)', 혹은 20개의 부스터인 '케이스(Case)' 단위로 구매를 하는 컬렉터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피겨들은 플레이를 위해 만난 플레이어들 간에 교환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막연할 것 같은 구성이지만, 사실상 이 판매 방식은 히어로클릭스 세계의 핵심입니다.

지난해 화제작이었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부스터 시리즈. 이렇게 구입하면 브릭(Brick) 하나


이런 판매 방식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히어로 클릭스 자체가 시류에 따라서 유행의 사이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작사인 위즈키즈는 특정한 히어로들의 피겨 라인업을 코믹스 출간, 영화 개봉, 혹은 자사의 기념일에 맞춰 한정 수량만 출시를 합니다. 그리고 이 라인업의 붐이 지나면 해당 피겨들은 단종이 되죠. 그리고 다음 이벤트에 맞춘 새로운 라인업이 예고 됩니다.

이렇게 히어로클릭스의 피겨 자체가 하나의 사이클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디씨 코믹스의 설립 75주년을 맞이해서 판매된 DC 히어로들의 특별 피겨는 단기간동안에 그야말로 엄청난 구매 러시 가운데 출시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피겨들이 레어 아이템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수집과 교환, 그리고 희귀본들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이미 미국문화에서 '야구 카드' 수집과 비슷한 맥락으로 자리를 잡은 선례가 있습니다. 이제 피겨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히어로클릭스의 유행은 수퍼 히어로에 대한 관심과 비례합니다.  10여년전 처음 시작 되었을때만 하더라도 코믹스의 팬들 사이에서 조곤조곤히 회자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큰 인기가 있었죠. 그런데 이제 헐리웃 영화들이 코믹스의 영웅들을 대중 문화의 은막으로 끌고 나왔고, 그 가운데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연작처럼 높은 평가를 받는 명작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망작이든 걸작이든 꾸준하게 양산되는 수퍼 히어로 영화들은 다시금 코믹스에 대한 관심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면서 코믹스와 영화간의 상생은 점점 더 돈독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히어로클릭스도 '수집'과 '플레이'라는 취미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큰 시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소소하게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수퍼히어로 하면 수퍼맨이나 배트맨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해외의 많은 코믹스나 그래픽 노블 걸작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고, 미국인들에게만 친숙했던 아이언맨, 토르, 그린 랜턴 같은 히어로들도 이제 한결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원더우먼이나 헐크가 티비 시리즈로 시작된 캐릭터가 아님을 알게 되었죠.  여기에 보드게임 문화도 더욱 커져가면서 그 중간지점인 히어로 클릭스 역시 실타래처럼 관심의 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DC와 마블에 중심을 두고 있는 히어로클릭스는 점점 그 나래를 펼쳐나갈 것입니다. 일단 게임 캐릭터를 히어로클릭스 라인업으로 가져오는 시도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10년은 더 갈듯한 수퍼히어로 영화들의 제작 소식들 역시 히어로클릭스의 탄탄대로를 예고하고 있고요.  이런 붐이 더해진다면 히어로클릭스는 미니어쳐 게임의 세계에서 정말로 고유한 그만의 스탠다드로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이미 잡았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