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아이폰 시대의 보드게임은?

'담달폰'이라는 오명을 한동안 달고 다녔던 애플의 아이폰이 드디어 출시 되었습니다.


이제 국내 가입자가 10만명을 향해 달려간다 하니 가히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상 전화기로서의 기능을 제외한다면 몇년전 국내에서도 출시된 아이팟터치와 비슷한 기기이니 어떻게 보면 때늦은 호들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거의 모든 국민이 하나씩 들고다니는 핸드폰으로서의 대중화는 MP3 플레이어의 경우와는 분명 구분될만 합니다.


아이폰의 활용 가운데 가장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것은 아이폰의 제작사인 애플이 운영하는 앱스토어(App Store)입니다.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말 그대로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내에 설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온라인 판매점입니다. 상점(Store)답게 유료로 운영되지만 상당한 수의 애플리케이션들이 무료로 제공되기도 합니다. 트위터를 즉석에서 열람하고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 지하철 노선도, 사전, 택배 조회기, 메모장, 가계부.... 그 반경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리고 물론 '게임'을 빼놓을 수 없겠죠.


게임기로서 아이폰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2년전만 해도 그야말로 국내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닌텐도사의 DS를 능가할 정도죠. 인터넷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두 기기의 비교담론이 오르내렸고요. 그 최종결과가 어떻든 게임기로서의 위상을 톡톡하게 맛보았던 닌텐도로서는 '한낱 전화기(이자 스마트폰)'인 아이폰과의 비교 자체가 일면 굴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성공의 핵심은 온라인으로 쉽게, 그리고 (닌텐도 등의 게임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게임의 종류들입니다. 큰 맘먹고 게임 타이틀을 하나하나 사야했던 PSP나 닌텐도DS에 비해 아이팟터치/아이폰의 게임들은 구입까지의 과정이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이팟터치/아이폰 용 게임이 보편화 되면서 심지어 다른 플랫폼으로 유명했던 게임들의 아이폰 버젼까지 차례로 등장했고 그 장르는 슈팅게임부터 레이싱 게임까지 반경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드게임도요.

하드웨어의 잇점보다도 간편함에 무게를 둔 아이폰/아이팟터치에게 보드게임은 충분한 블루오션이 되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수도쿠나 바둑, 도미노, 마작류의 게임들은 이미 앱스토어 초기에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고, 이후로 사람들이 점점 아이팟으로 즐기는 게임들에게 익숙해 지면서 잘 알려진 본격적인 보드게임들 역시 서서히 앱스토어에 등장했죠.


앱스토어 베스트 셀러인 [우노]는 온라인 대전까지 가능해지면서 그 인기가 더해졌습니다.



일단 아이폰의 근원지가 미국인지라 미국의 보드게임들이 먼저 터잡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스테디 셀러인 [모노폴리], [우노], [클루] 등이 서서히 인기몰이를 시작했죠.


이후에는 보드게임 계의 베스트 셀러들이 하나하나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하드웨어적인 제한때문에 비교적 간단한 게임들이 주종을 이루긴 했지만, SDJ 수장작인 [줄로레또]의 출시는 굉장히 고무적인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독일, 핀란드, 이스라엘 등 다양한 출신성분의 보드게임들이 차례로 앱스토어에 등장했습니다.



특히나 라이너 크니치아의 게임들은 아예 'Reiner Knizia's' 라는 타이틀을 달고 거의 프랜차이즈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비교적 근작인 [포이즌]부터, 이런 게임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득한 구작들도 있었고요. 특유의 산술적이고 딱 떨어지는 크니치아 특유의 게임 메커니즘이 아이팟의 인터페이스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에 생겨난 결과같아 보입니다. 물론 워낙 만들어놓은 게임들도 많지만요.

앱스토어에 등록된 크니치아의 게임들. [드래곤 마스터]의 재판인 [로봇 마스터]는 앱스토어에서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출시일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올 한해동안 쏟아져나온 게임들입니다.




게임뿐만 아니었습니다. 가상 주사위 굴리기 애플리케이션, 모래시계 애플리케이션 처럼 그럭저럭 보드게임에 도움이 될만한 프로그램들 역시 보드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회자되었고, 유명한 보드게임들의 복잡한 점수 계산 전용 용도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 온라인 사이트인 보드게임긱과의 연동으로 개인계정을 관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해외의 유명한 보드게임 사이트들에서 아이폰에 대한 관심은 큰 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점수 계산 어플 (아그리콜라!), 보드게임긱 어플 등.


이쯤되면 보드게이머들이 아이폰으로 즐겨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법도한데... 그런데 국내 유저들에게는 또 하나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앱스토어의 '국적'이죠.


앱스토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 아이튠즈 스토어. 이 곳은 아이팟/아이폰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아이튠즈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곳은 게정을 만들때 등록한 지역에 따라서 해당 지역의 아이튠즈 스토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튠즈 스토어 코리아의 경우, 실제로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의 수가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그리고 보드게임 어플리케이션 중 대다수가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에만 있습니다.

 

아이튠즈의 국가 선택 화면


가끔 미국 스토어에서 먼저 릴리스 된 후 다른 나라에도 풀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보드게임 어플들을 구입하거나 하려면 천상 미국 아이튠즈에 계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미국 아이튠즈의 계정에서 사용할 신용카드는 반드시 미국내에서 발급된 것만 가능합니다. 참 고까운 일이죠.


결국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작정한다면 그냥 최근에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한국 아이튠즈 스토어의 어플들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도전해보고 싶은 유저들은 기타 편법을 통해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에 계정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어플들과 디앵힌 미디어 컨텐츠 등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도 미국 아이튠즈 스토어에 계정을 만든 경우입니다. 만든지 3년 여가 되었는데 미국 스토어의 모든 아이템들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국내 애플리케이션들도 거의다 올라오기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 아이튠즈 스토어에서'만' 찾아지는 애플리케이션은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실질적인 메리트가 있는 편입니다.


제일 잘 알려진 방법은 해외에서 기프트 카드를 구입해서 '리딤코드'란 것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일종의 상품권이죠. 신용카드가 없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프트 카드 자체도 그다지 구입하기에 녹록하지가 않고, 액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소 성가신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세계적인 지불 사이트인 페이팔(Paypal)에 가입해서 계정 연결을 시키거나, 일단 미국 계정에 등록을 한 뒤 잠시 계정의 국가 정보를 홍콩으로 바꾸어서 국내에서 발급된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시키고 (미국 아이튠즈에서는 거절되는 신용카드 정보가 홍콩 아이튠즈에서는 입력 가능해집니다) 다시 계정의 국가정보를 미국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상 미국 아이튠즈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한 편이며 아이폰 카페를 중심으로 정보가 오가는 편입니다. 스크린 샷까지 제공하며 세세한 절차를 알려주는 사이트가 많기 때문에 이 곳에서 길게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좋은 정보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아이폰을 통한 보드게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 아이폰 이전에 PC나 다른 플랫폼으로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례는 많았기에 아이폰을 통한 호들갑이 좀 뒤늦은 면도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즐기는 보드게임만의 참 가치가 아이폰을 통해서 대체될 리는 결코 없겠지만, 모바일 세대의 새로운 트렌드 안에 보드게임이라는 장르가 하나의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눈여겨 볼만한 일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