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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믿을건 나밖에 없다. 유일무이 1인플 게임 [프라이데이] (Friday/2011)

 

태생부터 혼자서 플레이하는 솔리테어 게임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위기 관리나 전략 편성을 목적으로 한 일부 워게임들이 1인플 전용으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아주 대중적인 경우라고 할 수는 없죠.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1인 플레이 게임들은 대부분 '다인플 게임이면서 1인 플레이도 가능한 게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게임의 경우 1인 플레이는 다인플이 불가능할때의 차선책일 뿐이지, 1인플 자체가 아주 '화끈한' 재미를 주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선명히 찍혀있는 '1인플 전용' 표시



이런 점에서 프리드리만 프리제의 [프라이데이]는 꽤나 보기드문 게임입니다. 이 작품은 '1인 전용' 게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카드 공개에 따른 위기관리 방식이지만, 이를 협력 방식으로 적용해서 여럿이 진행한다 해도 게임 자체는 지극히 간단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 간에 순서를 나눌 공간조차도 없습니다. 굳이 2인플 정도로 플레이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한 쪽이 머리 싸매며 플레이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구경하는게 더 나아 보일 정도니까요.


이 작품은 프리제가 금요일마다 작업하고, 금요일에 발표하기로 한 '금요일' 연작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그 첫번째 작품은 주식 게임인 [검은 금요일]이었죠.


제목인 '프라이데이'는 금요일이란 뜻이 아니라 사람 이름입니다. 영국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원주민 소년의 이름으로 주인공인 크루소가 금요일에 만났다고 해서 지어준 이름이죠. 플레이어는 바로 이 원주민 소년 '프라이데이'가 되어 로빈슨 크루소가 여러 위기를 벗어나고 해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게임중 운영되는 덱들. 가장 오른쪽은 로빈슨 크루소 카드가 소진될때마다 추가되는 안좋은 효과의 카드입니다.



게임 진행은 단순합니다. 플레이어는 크게 2종류의 덱을 운영합니다. 한 장은 위기 카드로서 매 턴마다 펼쳐지고 해당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수치가 적혀있습니다. 아울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펼칠 수 있는 로빈슨 크루소 카드의 장수도 표시되어 있는데, 플레이어는 이에 따라 원하는 만큼의 카드를 펼칠 수 있습니다. 공개된 카드들에 적힌 수치의 합이 같거나 크면 해당 위기카드를 이기게 되고 그 위기 카드는 더 좋은 로빈슨 크루소 카드가 되어 재활용 할 수 있습니다.



프리제의 다른 게임인 [파워그리드 -첫 불꽃]에서 식량으로 사용되었던 마커가 이 게임에선 체력표시 용도로 사용됩니다.



3단계의 위기 레벨. 같은 카드라도 레벨의 상태에 따라 위기수치가 달라집니다.




위기 카드 덱은 모두 세 번 사용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전 턴에서 제거되는 카드들이 있다보니, 사용할 수록 위기 카드의 장수가 점점 줄어들긴 하지만, 새롭게 덱을 사용할 때마다 위기 레벨이 3단계 (녹색, 황색, 적색)로 올라가고, 그때마다 위험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결코 만만치는 않습니다.


위기에서 패배할 경우 체력 마커를 소진해야 하지만, 이때를 기회로 효율이 안좋은 카드를 영구제거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데이]는 수치 비교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방식이지만, 산술적인 전략보다는 선택이 더 중요한 게임입니다. 위기를 이기지 못할 경우 차라리 패배하면서 소진시키는 체력에 따라 효율이 좋지 않은 로빈슨 크루소 카드를 게임에서 영구 제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선택이 필요한 것이죠. 또한 아무리 득이 되는 카드라해도 게임 후반부에서는 역시 효율이 안좋아지기 때문에 과감히 제거하는 용단도 필요합니다. 특히 사용카드 더미를 소진할 때마다 안좋은 효과나 저효율의 카드가 한 장씩 가미되기 때문에 이런 덱빌딩스런(?) 사용카드의 효율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 게임 초반의 과감한 도전도 필요합니다. 매 턴마다 위기 카드는 두 장 중 한 장만을 선택하게 되고, 초보자들은 대부분 만만한 카드를 선택하게 되지만, 오히려 위험도가 높은 카드일수록 승리 후 획득되어 플레이어의 덱에서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좋은 카드는 획득하고, 안좋은 카드는 버려가며 보강된 덱을 사용해서 위기를 헤쳐나가는 짜릿함이 제법 쏠쏠합니다.



두 장의 위기 카드 중 선택해서 덤빌(?) 수 있습니다.



위기 카드는 일단 획득하면 고효율과 특수 능력이 빛나는 로빈슨 크루소 카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가적인 요소로 각종 효과들이 있습니다. 카드의 효율성, 위기 관리 수치의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체력의 상승 등 다양한 부가효과는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한 필수 요소들이기 때문에 적재적소에서 잘 사용을 해야 합니다. 승리전에 주어진 체력이 소진되면 플레이어의 패배고, 두 번의 해적을 모두 이겼을 경우 승리합니다. 아울러 승리했을 경우 현재의 자산에 따라 차별적으로 점수를 매길 수도 있고 난이도를 높이기 위한 요소들도 있습니다.

 


어리버리 로빈슨 크루소 카드들



난이도가 상당히 있는 게임입니다. 아마 처음 한 두 번의 플레이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을거에요. 하지만 그 몇 번의 플레이에서 승리를 위한 실마리가 던져지고, 실제로 다음 게임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프라이데이]의 큰 장점입니다. 응분과 도전을 미끼(?)로 리플레이성을 한껏 더 높여주니까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진행 방식 덕분에 1인플 고유의 완결성을 잘 갖추고 있고요. 디자이너인 프리제 특유의 괴짜성과 독특함이 묻어나지만, 게임성과 아이디어는 결코 무시 못할 수준의 훌륭한 작품입니다.

 

최종 보스인 해적 카드. 매 게임마다 두 장을 무작위로 선택해서 대결합니다.



또 한가지 통쾌한(?) 요소도 있습니다. 테마를 빌려온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를 대표하는 교양/모험 소설이지만, 그만큼 영국 작가의 제국주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묻어난 불편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원작 소설에서 크루소는 무인도에서의 자신의 환경을 영국식으로 '개조'하려 들고, 그가 만난 원주민 소년 프라이데이도 사실상 '주인-노예' 형태의 주종관계가 되죠. 그가 대적하는 원주민은 미개인 괴물처럼 묘사되고요.


프리제가 원작의 불편한 주제들을 이 게임을 통해 마구 놀려 댔음은 분명합니다. 설명서의 서두 부분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서바이벌 영웅이 아닌, 평화로운 원주민 섬에 난입해 잘 살고 있던 프라이데이를 성가시게 하는 찌질이로 표현됩니다. 설명서 뿐만 아니라, 게임중 사용하는 로빈슨 크루소 카드에서 표현되는 상태도 '얼빠진 상태', '바보 상태' 등으로 나오죠. 심지어 로빈슨 크루소 덱이 소진될 때마다 추가되는 안좋은 효과의 카드는, 크루소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위기 해결은 커녕 프라이데이에게 짐이 되는 성가신 존재가 되어 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에 최종 보스도 미개한 원주민들이 아닌 -역시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해적들이고요.


결정적으로 설명서 상에서 게임의 목표는 유럽의 영웅 로빈슨 크루소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이 크루소 아저씨를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프라이데이가 평온한 삶을 되찾게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품을 들여 (본 게임은 한글판이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설명서 앞부분과 게임의 상관관계를 익힌다면, 아마 게임의 재미가 배가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