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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굵고 짧게 카드로 도시 만들기 [더 시티] (The City/2011)


[푸에르토 리코]의 카드 버젼인 [산후앙] 그리고 SF 테마 게임인 [레이스 포 더 갤럭시] 카드 운용 시스템에 혁신적인 면을 도입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식 디자이너는 다르지만, 게임 방식의 중심에는 역시 [레이스 포 더 갤럭시]의 디자이너인 톰 레만이 있죠. 레만이 [푸에르토 리코]의 디자이너인 안드레아 세이파스에게 방식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를 [푸에르토 리코]와 결합해서 [산 후앙]이 나오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전반적인 난이도는 [산 후앙]이 [레이스 포 더 갤럭시]보다 쉬운 편이지만, [산 후앙]의 난이도 역시 초보자들과 함께 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만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톰 레만이 2011년 에센에서 출품한 작은 카드 게임 [더 시티]는 여러모로 앞서 언급한 두 게임의 축소판 같은 작품입니다. 아니, '부분판'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려나요? [산 후앙]과 [레이스 포 더 갤럭시]에서의 핵심적인 부분은 '건설' 혹은 '정착'이라 불리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더 시티]는 이 부분만을 따로 떼어 게임으로 만든거나 다름 없는 작품입니다.



게임 방식은 몇 줄로 요약해도 될 정도로 간단합니다. 5장의 카드로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은 선택한 카드 한 장을 동시에 내려놓되, 내려놓은 카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지불 비용은 바로 핸드에 있던 다른 카드들로서 1원당 1장으로 지불하면 됩니다.

각 카드에는 수익과 점수가 있는데, 한 턴에 한 장의 카드 건설이 끝나면 플레이어들은 지금까지 내려놓은 카드의 수익과 점수를 더합니다. 누적 점수 50점이 넘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게임이 끝나고,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면 수익을 받습니다. 수익은? 역시 카드로 받습니다. 놓여져 있는 카드의 기능 혹은 카드 간의 상관 관계에 따라서 건설의 제한 내지는 수익이나 점수 획득이 추가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산 후앙]이나 [레이스 포 더 갤럭시]를 수십,수백번 플레이 해본 이들이라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쉬운 규칙입니다. 실제로 50점을 획득하는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아서 5~10분,아무리 길어야 15분 정도면 게임이 끝납니다. 어떻게 보면 [더 시티]는 '그 유명한 [산 후앙]이나 [레이스 포 더 갤럭시]를 거두절미하고 핵심적인 부분만 떼어 초심자들과 플레이하면 어떨까?'라는 백일몽을 현실로 만든 게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더 시티]는 제법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게임입니다. 한 번의 플레이에서 카드의 기능 숙지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첫 플레이에서는 기본적인 수익/점수 획득 외에는 눈 돌릴 여지가 없지만, 게임이 익숙해 질수록 누적되는 혜택을 도모 할만한 수를 제법 궁리하게 해줍니다. 또 고효율 카드를 놓기 위해서는 전단계로 놓여져야하는 카드가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심오하지는 않은) 테크트리 개념도 있고요.  따라서 숙련자와 초보의 차이가 꽤나 큰 게임이기도 합니다. 초반에는 겨우 몇 장의 카드만으로 근근히 운용을 하지만, 중반만 지나면 12장의 핸드제한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카드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데, 사실상 숙련자는 이 도달이 빠르게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변수는 카드의 기능 운용입니다.


턴마다 점수 체크를 하는 방식 덕분에 숙련자들의 플레이를 보면, 대충 라운드마다 점수를 체크하면서 서로의 점수를 곁눈질하고, 50점에 먼저 도달하려는 일종의 레이싱 게임을 연상케합니다. 카드 늘어놓고, 점수 세어 본 뒤에 종이에 적고, 서로 점수 슬쩍 보고, 수익 얻은 뒤 필요한 카드 속아내고 다음 라운드로 가는 기계적인 흐름이죠.상대방의 아이콘에서 추가 점수를 획득하는 것 외에는 상호작용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런 인상이 더합니다.


게임의 단점은 빠르게 지나가는 턴마다 점수를 체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3종류의 아이콘을 통한 추가 점수를 매번 확인하는 것은 약간 성가실 정도이고요. (이 때문에 인터넷 포럼에서 트랙 카드라도 만들었으면 어떻겠냐는 약간의 의견들이 있기도 했는데, 디자이너인 레만은 그 보다는 스톤이나 칩으로 누적점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플레이 타임이 짧아서 반복 플레이를 통한 체득이 좋은 게임이 플레이 타임이 짧다는 것은 큰 미덕입니다. 그리고 [더 시티]는 그 미덕의 수혜를 잘 받고 있는 게임입니다. 예상외라는 평을 들었던 에센 페어 플레이 차트의 순위권 (17위) 등극 역시 현장에서 여러분의 플레이가 가능했던 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톰 레만이 만든 힛트작들의 다이제스트 버젼으로서 [더 시티]는 절대적인 재미보다는 휴대에 간편하고 빠르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조건' 면에서 더 우위에 있는 작품일듯 합니다. 필러 역할로서 아주 충실한 그런 게임말이죠. 아울러 앞서 언급했듯이 [산 후앙]이나 [레이스 포 더 갤럭시] 체험의 중간 단계로 권하기도 충분한 게임이고요. 아무튼 여러모로 기능적인 작품이네요.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약한 특성 덕분에 혼자서 익히기가 쉽다는 점도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 리뷰의 사진은 한글화 및 보호용 프로텍터가 씌워진 상태로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