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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음모와 의심. 진정한 토론형 게임 [레지스탕스] (Resistance/2009)


보드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마피아 게임은 많이들 들어봤을 겁니다. 마피아의 변형인 [타불라의 늑대] 시리즈는 카드 게임이지만, 카드가 굳이 없어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토론형 파티게임이죠. 그래서인지 요즘엔 여러가지 변형룰을 가미시켜서 카드 게임 자체의 의미를 갖는 시도도 하고 있는듯 하고요.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 있어서 환영받는 게임이지만 마피아 게임을 이야기할때 많이들 말하는 맹점은 범인을 찾지 못했을 경우-특히 인원이 많을 경우 게임이 길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지목당해서 도태된 멤버들은 게임이 끝나기를 지리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돈 에스크리지의 [레지스탕스]는 또 다른 마피아 분위기의 토론형 파티게임입니다. 특히 이 게임은 발표당시부터 플레이어가 게임 초반에 제명되는 경우가 없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5명에서 10명까지 가능한 이 게임은 플레이어 인원수에 따라 일부 미래의 독재세계에 저항하는 저항군 ('저항군'이라고 하니까 가끔 혼동되지만, 아무튼 '좋은편'입니다)과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투입된 첩자로 나뉩니다. 인원수에 관계없이 5라운드 동안 진행되는 게임에서 저항군측은 주어지는 임무를 3번 이상 성공시켜야 하고, 첩자들은 이를 막아야 합니다. 따라서 게임은 1,2위 등으로 서열이 나뉘는 방식이 아닌 전체팀의 성공 혹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라운드마다 임무에 투입되는 인원을 리더가 정하게 됩니다. 근거는? 적어도 초반 라운드에는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왜냐면 전체인원 가운데 누가 첩자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첩자들끼리는 서로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려한 말빨로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임을 내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라운드에서의 임무 실패 혹은 성공 여부로 플레이어들은 점차로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혹은 아닌지를 '예측'하게 됩니다.


임무에 투입된 사람을 표시하는 카드


임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없습니다. 2명이든 3명이든 투입되는 인원이 비밀리에 성공/실패 카드를 내는 것이 임무착수의 전부입니다. 임무 투입 인원들이 낸 카드들은 -누가 무엇을 내었는지 알 수 없도록- 섞여진 뒤에 공개되고, 만장일치로 성공 카드를 내었다면 임무는 성공, 한 장이라도 실패 카드가 포함되어 있다면 임무는 실패가 됩니다. 이런식으로 임무가 먼저 3번 성공되면 저항군의 승리, 3번 실패되면 첩자들의 승리입니다.


한 장이라도 미션 실패 카드가 포함되어 있으면 임무는 그 즉시 실패.


따라서 저항군들은 가급적이면 임무 투입시 저항군들만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하고, 첩자들은 어떻게든 임무에 잠입해서 방해를 해야합니다.  만약 임무에 투입되는 인원이 저항군이라면 반드시 성공 카드를 내야 하지만 (실패 카드를 낼 이유도 없고요), 첩자인 경우 신뢰를 얻기 위해서 일부러 성공 카드를 낼 수 도 있습니다. 이때문에 저항군은 점점 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됩니다.


투표


임무에 선발되는 인원은 궁극적으로 이번 라운드에서 리더인 플레이어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고, 그 리더의 정체 (혹은 판단력)를 신뢰 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임무 투입전 전체 멤버들이 투표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과반수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하면 임무는 파기되고 리더는 바뀌게 됩니다. 특히 이 투표는 각자가 낸 찬반의 여부를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임무와 더불어 플레이어들의 정체 예측에 도움을 줍니다.


플레이를 하다보면 첩자편이 유리한 구석이 있습니다. 실제로 디자이너가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첨예한 전략이 가미되는 게임은 아니기때문에 그 유리함도 결국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긴 하지만. 저항군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가며 능글맞게 방해공작을 하는 첩자팀은 분명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항군이 지리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첩자팀에 비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첩자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임무팀에 저항군만을 투입시켜 성공시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냉정한 판단과 이를 동료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다면 첩자팀들이 속으로 애간장을 태우게 할 수 도 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적극성을 유도하는 것도 마피아 게임과 비교되어 두드러지는 장점입니다. 적어도 승패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임무에 참여하거나 혹은 첩자로 의심되는 멤버를 배제시키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니까요.


확장 카드



숙련자들끼리라면 기본적으로 포함된 확장 카드들의 사용이 분위기를 돋궈줍니다. 이 카드들은 리더의 선택에 따라 누군가가 아예 특정 플레이어의 정체를 볼 수 있는 등의 과감한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극단적인듯 하지만, 결국 [레지스탕스]는 다른 플레이어의 정체에 대한 의심과 신뢰, 그리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단서보다는, 게임의 파티 분위기를 더욱 돋궈주며 서로의 목소리를 드높이게 해줍니다.

'마피아 게임 스타일' 분위기로 갈음을 했지만, 사실 [레지스탕스]는 여럿이 할 수 있는 토론형 게임이라는 기조만 같을뿐 새로운 설정으로 짜여진 파티게임입니다.

디자이너인 돈 에스크리지는 한국에서 영어교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유달리 국내 보드게이머들 사이에서의 피드백이 활발한 게임이기도 하죠. 현재 에스크리지는 조금 더 다이나믹한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변형룰, 혹은 새로운 게임을 구상중이라고 합니다. 보강룰이나 새로운 게임을 만나는 것도 기대되지만, 적어도 [레지스탕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개념의 토론형 게임입니다.